한국과 일본, ‘군사 협력’ _ 금기 넘어 새로운 안보 지형으로
2025년을 향해 가는 지금, 한일 양국은 그 어느 때보다도 ‘현실’을 직시하고 있다. 과거 감정과 역사적 갈등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웠던 ‘군사 협력’이라는 민감한 주제에 대해, 양국 국민이 생각보다 실용적이고 전략적인 접근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최근 한국일보와 일본 요미우리신문이 공동 실시한 여론조사는 이러한 변화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한일 군사 협력, ‘금기’에서 ‘현실 대안’으로
‘한국은 일본과 군사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63.4%의 한국인이 ‘그렇다’고 답했다. 2017년 같은 조사에서 찬성 의견이 41%였던 것을 생각하면 무려 22.4%p 상승한 수치다. 보수 정권이 아닌 이재명 정부 하에서 일어난 변화라는 점도 흥미롭다. 과거 정부들이 군사 분야의 한일 협력을 꺼려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는 단순한 여론 변화가 아니다. 국제정세의 흐름 속에서 국민이 느끼는 안보 현실이 달라졌음을 보여준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은 일상이 됐고, 중국의 군사 팽창, 러시아의 불안정한 외교 행보, 그리고 결정적으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 복귀 가능성이 겹치며, '우리가 믿을 곳은 우리밖에 없다'는 정서가 퍼지고 있는 것이다.
일본 국민의 변화도 눈에 띈다. 2017년 조사에서는 절반가량인 53%가 한일 군사 협력에 찬성했지만, 올해는 **무려 71%**로 증가했다. 그만큼 일본도 ‘동북아 안보’에 있어 한국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으며, 지역 안정을 위한 실용 협력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미일 안보 트라이앵글’, 더 이상 이론이 아니다
이런 변화는 한일 양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미일 3국 협력 강화에 대한 찬성 여론은 한국 85.1%, 일본 83%로 매우 높게 나타났다. 특히 한국은 1년 새 5.9%p 상승해, 점점 더 미·일과의 전략적 연대에 신뢰를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는 더 이상 미국의 '우산'만을 의지할 수 없는 상황에서, 현실적인 생존전략으로 ‘삼각 협력’을 선택하고 있는 흐름이다.
실제로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에 대비해 한미일 3국이 협력 대응해야 한다는 의견에도 한국 64.7%, 일본 60%가 찬성했다. 이는 군사 협력이 단순히 북한 대응을 넘어서, 지역 안보 전체에 대한 대응체계로 확대되고 있다는 상징적 시그널이다.
미국-중국 사이, ‘미국 선택’ 강화되는 민심
무엇보다 흥미로운 부분은 ‘미국과 중국 중 어느 국가가 더 중요한가’라는 질문에 대한 응답이다. 한국인 중 69.3%가 미국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답했으며, 이는 지난 2년간 꾸준히 증가한 수치다. 일본 역시 같은 흐름을 보이며, 중국에 대한 기대감은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이는 경제적 유대감보다도 전략적 안정과 동맹 신뢰성이 국민 인식에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뜻이다. 한중 관계가 흔들리는 가운데, 미국의 영향력은 오히려 강화되고 있다. 특히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집권 가능성이 다시 제기되면서, 한국과 일본 모두 스스로의 안보 지위를 ‘공고히 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커지고 있는 셈이다.
이재명 정부와 ‘실용 외교’의 작용
이번 조사 결과를 해석하는 또 하나의 키워드는 **‘실용 외교’**다. 오가타 요시히로 후쿠오카대 교수는 “한국인의 안보 인식 변화는 이재명 정부의 실용 외교 기조가 영향을 준 것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이재명 대통령은 외국 정상과의 통화에서 미국 다음으로 일본을 택하는 이례적 행보를 보였고, 이는 국민 인식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실용주의 외교는 ‘역사 문제는 역사 문제대로’, ‘안보는 안보대로’라는 이원적 접근 방식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감정보다는 국익을, 과거보다는 미래를 택한 정책 방향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
한일 군사 협력, 더 이상 ‘불가역적’ 변화인가?
여론은 빠르게 바뀔 수 있지만, 이번 조사 결과는 단순한 일시적 흐름 이상으로 보인다. 동북아의 안보 지형이 급변하고, 미중 전략 경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한국과 일본은 이제 서로를 피할 수 없는 안보 파트너로 인식하고 있다.
물론 역사 문제, 국민 감정, 정치적 리스크 등 넘어야 할 산은 여전히 많다. 그러나 이제 ‘군사 협력’은 더 이상 금기어가 아닌, 국가 생존을 위한 전략 중 하나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한국과 일본, 그리고 미국의 삼각축은 앞으로 동북아 안정의 핵심 변수로 작용할 것이며, 이는 앞으로의 외교와 안보 전략에 있어 중요한 기준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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