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공간, 자연의 교차점 – 원주 뮤지엄 SAN ‘GROUND’에서 만나는 앤서니 곰리와 안도 다다오의 예술적 여정
한국 강원도 원주의 산자락 깊숙이 자리한 **뮤지엄 SAN(Museum SAN)**은 단순한 미술관을 넘어 명상과 자연, 건축과 예술이 공존하는 복합적 감성의 성소로 자리매김해왔습니다.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노출 콘크리트 건축, 제임스 터렐의 빛의 예술, 싱잉볼과 함께하는 명상관까지… 이곳은 이미 '공간이 곧 작품'이라는 철학을 실천해 온 특별한 장소입니다.
그리고 이제, 이 신성한 공간에 또 하나의 상징이 더해졌습니다. 바로 영국 조각가 **앤서니 곰리(Anthony Gormley)**의 세계 최초 상설 전시관 **‘GROUND’**입니다.
‘GROUND’, 인간과 우주가 만나는 지하의 성전
나선형 계단을 따라 지하로 내려가면 마치 다른 세계에 도착한 듯한 돔 형태의 구조물이 등장합니다. 그 중심엔 로마 판테온을 연상케 하는 원형 천창이 있고, 하늘에서 쏟아지는 자연광은 공간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조용히 변화시킵니다. 이는 단순한 건축적 장치가 아닌, 안도 다다오와 앤서니 곰리가 공간 그 자체를 예술로 정의한 결과물입니다.
이곳엔 다양한 자세로 앉거나 누워 있는 7점의 인체 조각이 녹슨 철의 형태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조각들은 놀랍도록 조용히, 그러나 압도적으로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고요한 공간 속 소리의 증폭 – 예술은 청각까지 확장된다
'GROUND'는 단순히 시각적 감상의 영역을 넘어서 청각적 경험까지 관람객에게 열어둡니다. 유리벽을 통해 외부 풍경과 내부 구조를 먼저 관찰한 후, 본격적인 전시장에 들어서면 모든 소리가 증폭되는 구조가 방문객을 맞이합니다.
발걸음 하나, 속삭임 하나가 천장과 벽면에 반사되어 울려 퍼지고, 우리는 자신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귀로 체감하게 됩니다. 곰리는 이 공간을 "연주를 기다리는 악기"라고 표현했습니다. 아직 완벽하게 조율되지 않은 이 악기의 울림은, 우리가 이 공간과 어떻게 교감하느냐에 따라 수많은 해석과 감동을 만들어냅니다.
인체, 철, 자연 – 곰리 예술의 3대 언어
앤서니 곰리는 20m 높이의 ‘북방의 천사’로 전 세계적 명성을 얻은 작가지만, 그의 작품의 핵심은 늘 인체와 자연의 관계에 있습니다.
이번 ‘GROUND’의 조각들은 철이라는 재료를 통해 변화와 시간성에 주목합니다. 그는 “철이 녹슨다는 건 산소와의 만남이고, 변화의 증거”라며, 철이 곧 대지와 인간을 잇는 상징적 재료임을 강조했습니다. 날씨와 시간에 따라 작품은 끊임없이 변하게 되며, 그 변화 자체가 예술의 지속적인 생성 과정이 됩니다.
조각의 배치도 무작위가 아닙니다. 그는 일본 교토의 료안지 돌 정원에서 영감을 받아 인체 조각들을 배치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조각들은 공간에 에너지를 채우는 ‘닻’의 역할을 하며, 곰리의 표현대로라면 “고요하고 정지된 정거장” 입니다.
‘GROUND’ 그 너머 – ‘Drawing on Space’와 Orbit Field II
‘GROUND’는 단독 공간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뮤지엄 SAN 본관에서는 **앤서니 곰리의 대규모 개인전 ‘드로잉 온 스페이스(Drawing on Space)’**도 함께 열리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얇은 스틸 바(봉강)로 구현된 인체 형상, 드로잉과 판화, 그리고 대표 설치작품인 **‘오르빗 필드 II(Orbit Field II)’**까지 만나볼 수 있습니다.
‘오르빗 필드 II’는 37개의 알루미늄 링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우주의 궤도 운동을 형상화한 작품입니다. 관람객이 그 안을 지나가면, 마치 스스로가 우주의 일부가 된 듯한 감각에 빠지게 됩니다.
2020년엔 방탄소년단(BTS)의 글로벌 프로젝트 ‘CONNECT’에서도 소개된 바 있으며, 한국에서의 전시는 팬들과 예술 애호가들 모두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습니다.
예술의 메시지를 묻다: 곰리와 안도가 말하는 ‘GROUND’
앤서니 곰리는 “이 작품은 특정 이데올로기를 말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이 세계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생각하게 만들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에게 몸은 단순한 껍질이 아닌, 자연의 순환 속 일부로서 언젠가는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야 할 운명을 지닌 존재입니다. 그의 조각은 그래서 더 따뜻하고 인간적이며, 동시에 묵직한 존재론적 질문을 던집니다.
안도 다다오 역시 영상 인사를 통해 “이 공간은 100년, 200년 후에도 자연과 예술의 관계를 이어주는 살아있는 세계가 될 것”이라며 곰리와의 협업에 대한 감회를 전했습니다. 두 사람은 공간, 재료, 빛, 그리고 인간이라는 주제를 통해 결국 예술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다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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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장소: 뮤지엄 SAN (강원도 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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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기간: 2025년 6월 20일 ~ 11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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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특징: 세계 최초 곰리 상설관, 공간 자체가 전시, 자연과 건축의 유기적 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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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 팁: 명상관과 빛의 공간, 제임스 터렐관도 함께 둘러보세요. 하루로는 부족할 만큼 풍성한 체험이 기다립니다.
‘GROUND’는 단지 조각이 놓인 공간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존재한다’는 감각을 오감으로 되짚게 하는 체험의 장입니다. 고요함 속에 울리는 발자국 소리, 머리 위로 내리쬐는 빛, 철로 만든 인체가 던지는 철학적 울림…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관람객은 비로소 질문을 시작하게 됩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뮤지엄 SAN의 새로운 공간 ‘GROUND’는 그런 질문을 던질 준비가 된 이들을 위해 오늘도 조용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한 번의 방문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 여정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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