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방부의 방위비 평가, 한국엔 긍정·일본엔 불만…그 속내는?


 최근 일본 유력 경제지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미국 국방부 고위 당국자의 발언을 인용하며, 미국이 한국과 일본의 방위비 문제에 대해 상반된 평가를 내렸다고 보도했습니다. 기사에 따르면, 이 당국자는 한국에 대해서는 “새로운 정권 출범과 함께 방위비 분담 논의가 긍정적으로 진전될 것”이라고 평가한 반면, 일본에 대해서는 “안보 환경이 악화되었다면서도 여전히 헌법상의 제약을 핑계로 적극적인 방위 역할을 미루고 있다”라고 강한 불만을 드러냈습니다.

이러한 발언은 단순히 한·일 양국의 방위비 분담 문제에 국한되지 않고, 동북아시아 안보 지형과 미·중 전략 경쟁 속에서 미국이 동맹국에 요구하는 ‘실질적 기여’의 무게가 점점 커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오늘은 이 사안을 심층적으로 분석해 보겠습니다.


한국에 대한 긍정 평가: “새로운 정권, 새로운 기대”

먼저 한국에 대한 미국의 평가는 비교적 긍정적입니다. 미국 당국자는 한국의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면서 방위비 문제에서 진전이 기대된다고 언급했습니다. 실제로 한국은 지난 수년간 미국과의 방위비 분담 협상에서 적지 않은 부담을 안아왔습니다. 2021년 체결된 제11차 한미 방위비분담 특별협정(SMA)에 따르면, 한국은 분담금을 전년 대비 13.9% 인상한 1조1833억 원을 부담하기로 했고, 이후 매년 국방비 증가율에 연동하여 인상하는 구조를 수용했습니다.

한국 정부는 주한미군 주둔이 한반도 방위뿐 아니라 동북아 전체의 안정과도 연결된다는 점을 인정하며 일정 부분 ‘공정한 분담’의 논리를 받아들였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북핵 위협의 고도화, 미·중 갈등 심화 등 안보 환경이 불안정해지면서, 미국의 확장억제(extended deterrence)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한국의 안보 전략에서 핵심 과제가 되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미국이 한국의 태도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은 크게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일본에 대한 불만: “말과 행동이 다르다”

반면 일본에 대해서는 미국의 불만이 노골적으로 드러났습니다. 미국 당국자는 “일본이 안보 환경 악화를 강조하면서도 여전히 헌법상 제약을 이유로 후방 지원에만 머물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일본은 평화헌법 9조에 따라 전수방위 원칙을 고수해왔습니다. 그러나 중국의 군사력 팽창, 북한의 미사일 도발, 러시아와의 갈등 등 안보 위협이 고조되면서 일본 정부는 2022년 ‘국가안전보장전략’을 개정해 반격 능력 보유를 명문화하는 등 변화의 조짐을 보여왔습니다. 또한 방위비 역시 꾸준히 증액해 2025년도 예산은 GDP 대비 1.8% 수준에 달했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시각에서 이는 여전히 부족합니다. 미국은 일본이 2027년까지 GDP 대비 2%로 방위비를 확대하겠다는 계획에 대해서조차 “현재의 안보 상황에는 불충분하다”라고 지적했습니다. 나아가 독일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재정 규제를 완화하면서 사실상 무제한적인 국방비 증액 체제로 전환한 사례를 언급하며, 일본도 ‘헌법 제약’을 이유로 머뭇거릴 것이 아니라 현실에 맞게 과감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압박했습니다.


미국의 속내: 인도·태평양 전략과 ‘실질적 기여’

미국의 이러한 태도는 단순히 양국의 방위비 분담액 문제만이 아닙니다. 본질적으로는 인도·태평양 전략을 뒷받침하기 위한 동맹국의 역할 증대 요구로 읽을 수 있습니다.

미국은 중국을 ‘가장 큰 전략적 도전’으로 규정하며, 군사·경제·기술 전 분야에서 대응 전략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일본은 지리적으로 ‘제1도련선(First Island Chain)’의 핵심 국가로서 미국의 중국 견제 전략에 필수적입니다. 따라서 일본이 단순히 후방 지원에 머무르지 않고, 보다 적극적으로 ‘전방 역할’을 수행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반면 한국은 한반도라는 특수한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미군의 안정적 주둔과 확장억제가 이미 필수적인 상황입니다. 한국이 방위비 분담 확대에 협조적이라면, 미국 입장에서는 한국에 대한 불만보다 ‘신뢰할 수 있는 동맹’이라는 평가가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입니다.


일본의 딜레마: 헌법 제약 vs. 안보 현실

일본 입장에서는 미국의 요구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전후 체제의 근간인 평화헌법 9조를 근본적으로 수정하지 않는 한, ‘공격적 군사력 보유’와 ‘전방 역할 확대’는 일본 내부에서 여전히 뜨거운 논란거리입니다. 실제로 일본 국민 다수는 안보 환경 변화에는 공감하면서도, 방위비 급증이나 전쟁 가능성 확대에는 우려를 표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이미 국방 예산을 대폭 증액했고, 방위산업 육성 정책도 강화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속도’와 ‘범위’입니다. 미국은 인도·태평양 전략의 시급성을 강조하며 일본이 더 빠르고 과감하게 움직일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고, 일본은 헌법과 재정적 한계 속에서 신중하게 접근하려는 입장입니다.


동맹의 무게, 선택의 기로에 선 한·일

이번 미국 국방부 당국자의 발언은 한국과 일본이 처한 안보 환경과 동맹 구조의 차이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한국은 이미 방위비 분담 협상에서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 ‘긍정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반면, 일본은 여전히 헌법 제약과 정치적 논란 속에서 미국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불만을 사고 있습니다.

앞으로 한·일 양국은 미국의 압박 속에서 각각 다른 방식으로 ‘실질적 기여’를 요구받게 될 것입니다. 한국은 분담금 확대뿐 아니라 한미일 안보 협력의 실질화를, 일본은 헌법 해석 변경과 방위비 증액을 통한 역할 확대를 선택지로 마주하고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동북아 안보 지형이 급변하는 지금, 미국의 요구는 단순한 협상 카드가 아니라 ‘전략적 현실’이라는 점입니다. 한·일 모두 동맹의 무게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 이제는 선택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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