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 수정산성] 신라에서 조선까지 이어진 성곽 축조 기술의 보고

 


1. 거제 수정산성, 사적으로 지정 예고

국가유산청은 경상남도 거제시에 위치한 ‘거제 수정산성’을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지정할 계획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수정산성은 신라 시대에 처음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며, 고려와 조선을 거치며 여러 차례 증·개축된 성곽입니다. 전체 둘레는 약 450m로 크지 않지만, 성곽 축조 기술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모했는지를 보여주는 귀중한 유적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번 지정 예고는 단순히 한 성곽을 보호하는 차원을 넘어, 우리나라 성곽사(城郭史)를 새롭게 조명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닙니다.


2. 신라 시대의 초축 성벽 – 남해 방어망의 구축

수정산성의 기원은 신라가 한창 남해 지역으로 진출하던 6세기 후반~7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신라는 가야 지역을 병합하며 세력을 확장했고, 남해안 일대에 대한 방어망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산성 축조가 활발히 이루어졌습니다.

수정산성의 초축 성벽은 테뫼식 석축산성(山城)의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이는 산 정상부를 중심으로 성벽을 빙 둘러쌓는 방식으로, 방어 효율성을 높이는 데 유리했습니다. 발굴 조사 결과, 당시 사용된 석재의 가공법이나 축성 기법은 신라 특유의 기술적 특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수정산성은 단순한 지역 방어 거점을 넘어, 신라의 해상 진출 전략을 보여주는 역사적 증거라 할 수 있습니다.


3. 고려와 조선으로 이어진 성곽의 변모

시간이 흘러 고려와 조선 시대에 들어서면서 수정산성은 다시 쌓이고 보수되었습니다. 성곽의 형태와 축조 방식에서 당대 기술의 발달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특히 조선 후기의 성벽은 신라 초기 성벽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구조적 차이를 보여주며, 성곽 연구에 있어 중요한 비교 자료가 됩니다.

성안에서 발견된 건물터는 온돌 시설이 없는 점, 장식기와가 사용된 점 등으로 미루어 보아 창고나 관사 등 특수한 목적을 가진 건물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는 단순한 군사적 요새를 넘어, 행정적·경제적 기능을 함께 담당했음을 시사합니다.


4. 19세기, 거제도민의 손으로 다시 쌓은 성곽

수정산성이 가진 또 다른 독특한 가치 중 하나는 바로 **1873년(고종 10년)**의 축성 기록입니다. 성내에 있는 ‘수정산성축성기’ 비석에 따르면, 이 시기의 성곽은 거제부사 송희승과 거제도민들의 힘으로 다시 쌓아 올려졌습니다.

이 시점은 이미 조선 후기, 국가적 차원에서 대규모 축성이 거의 사라진 때였습니다. 실제로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성곽 축성과 관련된 기록은 871년 김해 분산성 수축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수정산성은 문헌과 고고학 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가장 늦은 시기의 산성으로서 희소성과 상징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습니다.

또한 당시 외세의 침략 위기 속에서 중앙 정부의 지원 없이 지방관과 백성들이 힘을 모아 성을 쌓았다는 사실은 지역 공동체 정신을 보여주는 사례로도 평가됩니다.


5. 조선 후기 성곽 구조와 석회 사용의 특징

조선 후기 수정산성의 축조에서 주목되는 또 하나의 점은 석회의 대량 사용입니다. 영남 지역은 석회 산지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고급 건축 재료였던 석회를 대거 사용했다는 사실은 당시 거제 지역의 축성 의지와 기술력을 보여줍니다.

이로써 수정산성은 조선 후기 성곽 구조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유적일 뿐만 아니라, 자재 운송과 공사 방식, 당시 지역사회의 역량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연구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6. 옥산성에서 수정산성으로 – 이름의 변화

수정산성은 오랫동안 ‘옥산성’이라는 이름으로 불려 왔습니다. 1974년에는 ‘거제 옥산성’이라는 명칭으로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지요. 그러나 최근 거제시와 연구자들은 『거제군읍지』 등 옛 문헌 기록을 근거로, 본래의 명칭인 ‘수정산성’으로 변경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쳐 왔습니다.

이에 따라 국가유산청은 이번에 ‘거제 수정산성’이라는 이름으로 사적 지정 예고를 발표했고, 예고 기간 동안 각계의 의견을 수렴한 뒤 문화유산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최종 확정할 예정입니다. 명칭의 변화는 단순한 호칭 정정이 아니라, 역사적 정체성을 바로잡는 중요한 작업이라 할 수 있습니다.


7. 학술적 가치와 보존의 필요성

거제 수정산성은 단순한 성곽 유적을 넘어, 신라에서 조선에 이르는 축성 기술의 변천을 한눈에 보여주는 종합 교재와 같은 유산입니다. 특히 신라의 남해 진출 전략, 고려·조선 시기의 군사·행정적 변화, 조선 후기 지방사회의 자율적 축성 활동까지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습니다.

앞으로의 보존과 연구가 더욱 강화된다면, 수정산성은 영남 지역을 넘어 한국 성곽사 전반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열쇠가 될 것입니다.


8. 맺음말 – 과거와 현재를 잇는 성곽

거제 수정산성은 비록 크지 않은 산성이지만, 그 안에 담긴 역사적 서사는 실로 방대합니다. 신라의 군사 전략, 고려와 조선의 성곽 기술, 조선 후기 거제도민들의 자발적 축성까지. 이는 단순한 돌담이 아니라, 시대와 지역을 살아간 사람들의 의지와 지혜를 담은 살아 있는 역사입니다.

국가유산청의 이번 사적 지정은 단순히 성곽을 보호하는 차원이 아니라, 역사적 정체성과 공동체 정신을 되살리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거제 수정산성이 제대로 연구되고 보존되어, 후대에도 그 가치를 널리 알릴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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