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머노이드 로봇 보행 기술의 진화 – 모델 기반에서 학습 기반, 그리고 하이브리드까지
휴머노이드 로봇(Humanoid Robot)은 사람의 신체 구조를 본떠 만들어진 로봇입니다. 겉모습만 놓고 보면 마치 사람처럼 두 팔과 두 다리를 갖추고 있어 ‘인간형 로봇’이라 불리죠. 그러나 구조를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의외로 기존 산업용 로봇이나 협동 로봇과 유사한 부분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팔은 다관절 로봇과 구조적으로 닮았고, 손을 대신하는 다지형 그리퍼는 산업용 로봇과도 공유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휴머노이드만이 가진 독창적인 부위가 있습니다. 바로 두 다리로 걷는 이족 보행 기능입니다. 바퀴나 무한궤도로 움직이는 대부분의 로봇과 달리, 사람처럼 두 다리를 이용해 걷는 방식은 휴머노이드만의 고유 기술입니다.
왜 ‘걷기’인가? – 보행 방식의 의미
차륜형 로봇이나 무한궤도형 로봇은 평지에서의 속도나 무거운 물체 운반 능력에서는 보행 로봇보다 유리합니다. 예를 들어 로봇 청소기 같은 AMR은 바퀴로 움직이기에 효율적이고, 폭발물 처리 로봇은 무한궤도를 활용해 안정적인 주행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보행 방식은 다른 이동 방식이 가지지 못한 지형 적응력이라는 강점을 가집니다. 문턱을 넘거나 계단을 오르고, 심지어 사다리를 타는 것도 가능하지요. 미국 국방부 연구에 따르면 바퀴형 로봇이 접근할 수 있는 지구 표면은 약 50%에 불과하지만, 다리를 이용한 로봇은 80% 이상의 지형에 접근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는 군사, 재난 구조, 탐사 분야에서 보행 기술이 가지는 전략적 가치를 잘 보여줍니다.
다만, 보행 기술을 실제 환경에서 구현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연구는 1990년대부터 꾸준히 이어졌지만 안정적이고 유연한 보행을 확보하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모델 기반 보행 제어 – 안정성과 수학적 예측
초기의 보행 기술은 모델 기반 제어(Model-Based Control) 방식에 의존했습니다. 이는 로봇의 동역학적 특성을 수학적으로 모델링하고, 사전에 계획된 보행 궤적을 정확히 따르도록 제어하는 방식입니다.
대표적인 기술이 **모델 예측 제어(MPC, Model Predictive Control)**입니다. MPC는 미래 상태를 예측하고 최적의 궤적을 계산해 안정적인 보행을 가능하게 합니다. 정밀한 위치 제어가 필요한 작업에서 특히 강점을 발휘합니다.
모델 기반 제어의 대표 알고리즘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 ZMP(Zero Moment Point): 줄타기처럼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지점을 계산해 걷는 방식으로, 천천히 걷는 상황에서 안정적입니다.
- CP(Capture Point): 사람이 넘어질 때 발을 앞으로 내딛는 것처럼, 다음 발을 내딛을 지점을 계산하는 방식으로 돌발 상황에 더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습니다.
혼다의 아시모(ASIMO)와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아틀라스(Atlas)는 모두 이 모델 기반 제어 기술을 토대로 개발된 대표적인 휴머노이드입니다.
하지만 모델 기반 제어에도 한계가 있었습니다. 현실 세계의 지형과 상황은 늘 예측 불가능하기 때문에, 수학적 모델만으로는 모든 변화를 반영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학습 기반 보행 제어 – AI의 힘을 빌리다
AI 기술의 발전과 함께 보행 기술은 **학습 기반 제어(Learning-Based Control)**로 진화했습니다. 특히 **강화학습(Reinforcement Learning, RL)**과 딥러닝을 통해 로봇은 실제 환경에서 경험을 학습하며 스스로 최적의 보행 패턴을 찾아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강화학습 기반 제어는 불확실성이 큰 환경에서도 탁월한 적응력을 보여줍니다. 울퉁불퉁한 지형이나 돌발 상황에서도 로봇은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균형 방식을 학습할 수 있지요.
대표적인 사례로는 어질리티 로보틱스의 캐시(Cassie), 테슬라의 옵티머스(Optimus), 피겨 AI의 피겨 01(Figure 01) 등이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강화학습을 활용해 기존 모델 기반 제어보다 훨씬 자연스럽고 유연한 보행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론 학습 기반 제어도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학습 과정에서 예측하기 어려운 행동이 나타나거나, 센서 오차로 인해 급격한 성능 저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안정성을 확보하는 문제는 여전히 큰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하이브리드 보행 제어 – 두 세계의 융합
최근에는 모델 기반 제어의 안정성과 학습 기반 제어의 적응성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방식이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스위스 취리히연방공대(ETH Zurich)는 DTC(Deep Tracking Control) 알고리즘을 개발했습니다. 이는 모델 기반 제어로 험지에서 실현 가능한 궤적을 계산하고, 이를 AI 학습 모델로 정밀하게 추종하는 방식입니다. 한마디로 ‘수학적 예측 + 경험 학습’을 동시에 활용하는 것이죠.
중국의 일부 휴머노이드 기업들도 빠르게 하이브리드 방식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애지봇의 X2-N 모델은 발에 바퀴를 부착해 필요에 따라 보행과 주행을 전환할 수 있습니다. 이 로봇은 카메라뿐 아니라 관절 토크, 압력 센서, 자이로 등 다양한 센서 신호를 활용해 지형을 실시간 분석하고, 상황에 따라 다리 또는 바퀴로 이동 방식을 바꿀 수 있습니다. 이는 휴머노이드 보행 기술이 단순히 ‘걷는 것’에서 나아가, 복합적이고 적응적인 이동 기술로 발전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사람처럼 걷는 로봇의 미래
휴머노이드의 보행 기술은 단순히 ‘사람처럼 걷는 것’을 넘어서, 인간이 접근하기 힘든 환경을 대신 탐험하고, 재난이나 산업 현장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핵심 기술입니다.
모델 기반 제어는 안정성과 이론적 검증의 강점을, 학습 기반 제어는 환경 적응력과 자율성을 제공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두 방식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제어가 대세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앞으로 휴머노이드가 우리 생활 속으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보행 기술의 안정성과 효율성을 더욱 높이는 연구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발전 속도를 본다면, 머지않아 우리는 사람처럼 걷고 뛰며 계단을 오르는 로봇을 일상에서 마주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