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방산, 세계 무기 시장을 뒤흔든 ‘신드롬’…그러나 그 이면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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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년, 세계 방산 시장의 주목을 끈 이름이 있다. 바로 ‘K방산’. 한국 방위산업은 더 이상 국내 안보를 위한 내수 시장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제는 세계 전장을 누비는 주역으로 자리매김했다. 한때 총 한 자루도 스스로 만들지 못했던 한국이 2024년 기준 전 세계 무기 수출의 2%를 차지하며 ‘10대 무기 수출국’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동 분쟁, 나토 재편 등 세계 각지에서 확산되는 지정학적 긴장은 전통적인 무기의 중요성을 재조명하는 계기가 됐다. 특히 지상전에 강점을 보이는 한국의 K2 전차, K9 자주포, 천무 다연장로켓 등은 신뢰성 높은 화력 무기로 평가받으며 수요가 폭증하고 있다. 북한이라는 특수한 안보 상황에서 길러진 실전 위주의 생산 능력과 품질이 세계에서 통하고 있는 것이다.
전시회부터 수출까지, 확산되는 K방산의 존재감
2024년 5월, 부산에서 열린 국제해양방위산업전(MADEX)은 K 방산의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행사였다. 전년 대비 50여 개 참가사가 늘어난 이번 행사에는 미국도 전략적으로 주목했고, 한화그룹 방산 3사는 사상 최대 규모의 통합 부스를 꾸려 세계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했다. HD현대중공업과 LIG넥스원 역시 공동 부스를 운영하며 유럽 및 중동 시장 개척에 총력을 다했다.
이러한 행보는 단순한 전시가 아니라 실질적인 수출 계약으로 이어지고 있다. 2022년 폴란드는 러시아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K9 자주포 672문, K2 전차 980대, FA50 경공격기 48대를 도입하기로 계약했으며, 이후 루마니아·슬로바키아 등 유럽 여러 나라와도 방산 거래가 논의되거나 체결되었다. 2017~2021년 한국 무기 수출에서 유럽이 차지한 비중은 6.1%에 불과했지만, 2023년에는 28%까지 급증했다.
유럽은 기회의 땅인가, 거대한 장벽인가?
그렇지만 무조건적인 낙관은 위험하다. 유럽은 ‘Buy European’ 정책을 내세우며 자국 무기 우선 구매를 권장하고 있다. 또 나토 회원국들 사이에선 무기 운용의 호환성을 높이기 위해 서로의 무기를 우선적으로 거래하는 관행이 있다. 실제로 스웨덴은 2024년 K2 전차 수입을 고려하다가 독일제 레오파드2A8 전차를 선택했다. 이런 선택은 실력보다는 정치적·군사동맹적 고려가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 많다.
또한 K방산은 현지 유지보수 시설 부족, 수출 금융 한도 문제 등 실질적인 수출 이후의 ‘사후 대응력’에서 아직 아쉬운 모습을 보인다. 예컨대 폴란드는 2차 실행 계약을 맺는 과정에서 한국 정부에 저금리 수출 금융을 요구했지만, 수출입은행 한도가 소진돼 진통을 겪었다. 국회가 법을 개정해 수출입은행 자본금을 늘리는 긴급 조치를 취했지만, 수출 이행이 차질을 빚을 뻔한 점은 방산 수출의 불안 요소로 꼽힌다.
기술 주권과 생태계…K방산의 구조적 과제
K방산의 성장이 마냥 반가운 일만은 아니다. 방산업계 내부에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과제들이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것이 기술 자립 문제다. K2 전차의 핵심 부품인 파워팩은 오랫동안 독일에서 전량 수입해왔다. 이로 인해 독일의 수출 통제 정책이 한국산 무기의 중동 수출을 가로막는 일이 생기기도 했다.
다행히 지난해 국산 변속기를 장착한 파워팩이 K2 전차에 탑재되며 국산화에 성공했지만, 아직 많은 무기 체계가 외국 기술에 의존하고 있다. KF21 보라매 전투기 역시 미국산 엔진을 사용하고 있어, 수출을 위해서는 미국 정부의 승인이 필요한 상황이다.
방산 생태계의 공정성 문제도 심각하다. 일부 대기업이 수출 원가 절감을 명분으로 중소 협력사의 납품 단가를 후려친다는 지적이 있다. 군사 보안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외부의 감시가 어렵고, 이러한 구조적 문제가 고착화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방산, 국민의 공적 감시와 윤리적 기준이 필요한 이유
방위 산업은 국민의 세금으로 유지되는 공공적 산업이다. 대법원은 2024년 4월, 한 시민 단체의 방산 전시회 시위에 대해 “방산 산업에 대한 비판은 공적 관심사에 해당한다”며 무죄 판결을 내렸다. 이는 방위 산업의 방향성에 대해 국민이 의견을 개진할 권리가 있다는 점을 법적으로 인정한 사건이었다.
K방산의 급부상은 분명 자랑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 무기가 전쟁을 넘어 민간인의 생명까지 위협하는 도구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윤리적 기준이 반드시 필요하다. 집속탄 같은 ‘비인도적 무기’에 대한 국제 협약 미가입, MTCR 규제 우회 시도 등은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신뢰도를 저하시킬 수 있다.
무기 수출국으로서의 책임, 이제는 논의해야 할 때
K방산의 성공은 ‘싸고 성능 좋은 무기’라는 공식에만 안주해선 지속될 수 없다. 국제적인 기준을 준수하고, 국내 기술력을 키우며, 방산 생태계 전반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확보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방위 산업 강국’의 길이다.
이제 K방산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세계의 무기고에 머물 것이냐, 국제 평화에 기여하는 책임 있는 수출국으로 도약할 것이냐. 방산 산업의 외형만이 아닌 철학과 윤리, 그리고 시민의 감시가 그 미래를 결정지을 것이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K방산의 다음 챕터는 바로 여기에서 시작된다.
#K방산 #무기수출국 #10대무기수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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