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를 늦추는 열쇠, ‘펠로타 단백질’…KAIST 연구진이 밝힌 장수의 비밀
인간에게 노화는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자연스러운 과정이자 수많은 질환의 근원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국내 연구진이 노화를 늦추고 장수를 유도하는 핵심 조절 인자를 발견하며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KAIST 생명과학과 이승재 교수 연구팀을 중심으로 연세대학교, 한국생명공학연구원(KRIBB)과 공동으로 진행된 이번 연구는 **‘펠로타(PELOTA) 단백질’**이 노화 속도를 조절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규명했습니다.
이번 성과는 향후 인간의 노화 연구뿐 아니라 알츠하이머병과 같은 퇴행성 뇌 질환 치료 전략에도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펠로타 단백질이란 무엇인가?
펠로타 단백질은 세포 안에서 단백질 합성이 이뤄지는 리보솜의 품질 관리에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리보솜은 mRNA(전령 RNA)에 담긴 유전 정보를 읽어 단백질을 합성하는 공장과 같은 역할을 하는데, 이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펠로타는 이러한 오류를 감지하고 비정상적인 mRNA를 제거함으로써 세포의 단백질 합성과정이 원활히 이루어지도록 돕습니다.
그간 RNA는 단지 DNA와 단백질 사이의 중간 산물로만 인식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불안정하고 수명이 짧아 연구하기 어렵다는 점도 이유였습니다. 그러나 이번 연구는 RNA 품질 관리가 단순한 중간 단계가 아니라, 세포의 건강과 수명 연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음을 보여준 것입니다.
예쁜 꼬마선충에서 확인된 장수 효과
공동연구팀은 노화 연구에 널리 사용되는 모델 생물인 **예쁜 꼬마선충(C. elegans)**을 이용해 펠로타의 역할을 검증했습니다. 그 결과 정상적인 선충에서 펠로타 발현을 높였을 때 수명이 연장되는 현상을 확인했습니다. 이는 리보솜 기반 품질 관리가 단순히 단백질 합성의 안정성을 넘어서, 생명체의 장수에 직접적인 기여를 한다는 사실을 입증한 것입니다.
반대로 펠로타가 결핍되면 비정상적인 mRNA가 제거되지 못해 리보솜 품질 관리가 무너지고, 세포의 균형이 깨지면서 노화가 촉진되었습니다.
mTOR 신호와 자가포식 경로의 조절
연구팀은 펠로타가 단순히 리보솜 수준에서 오류를 잡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세포의 대사와 노화 조절 핵심 경로인 mTOR 신호 전달계와 자가포식(autophagy) 경로까지 조절한다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 펠로타가 부족할 경우 → mTOR가 비정상적으로 활성화되고, 자가포식 기능이 억제되어 노화가 가속화됨
- 펠로타가 활성화될 경우 → mTOR 신호가 억제되고 자가포식이 촉진되어 세포의 항상성이 유지되고 수명이 연장됨
즉, 펠로타 단백질은 단순한 품질 관리 인자를 넘어 노화 네트워크의 핵심 조절자로 작용하는 것입니다.
인간과 생쥐에서도 확인된 보존성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효과가 단순히 선충에만 국한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연구팀은 생쥐와 인간에서도 펠로타 단백질의 기능이 보존돼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펠로타의 기능이 결핍되면 근육 노화가 촉진되고, 알츠하이머병과 같은 퇴행성 뇌 질환 발병 가능성도 높아진다는 사실이 관찰된 것입니다.
이는 RNA 수준의 품질 관리가 인간의 건강과 노화 조절에도 직접적으로 관여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라 할 수 있습니다.
연구의 의의와 향후 전망
지금까지는 DNA의 손상이나 단백질의 품질 저하가 노화의 주된 원인으로 주목받아 왔습니다. 그러나 RNA 차원에서의 품질 관리가 수명 조절에 기능적으로 관여한다는 직접적인 분자적 증거는 매우 드물었습니다. 이번 KAIST 연구팀의 성과는 RNA 품질 관리가 노화를 늦추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준 첫 사례 중 하나입니다.
이승재 교수는 “비정상적 RNA를 제거하는 것이 노화 조절 네트워크의 핵심 축이 됨을 확인했다”며, “이번 연구는 향후 인간 노화 연구와 퇴행성 뇌 질환 치료 전략 개발에 중요한 근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실제로 펠로타 단백질을 활용한 약물 개발, mTOR 억제제와의 병행 전략, 자가포식 활성화를 촉진하는 치료법 등 다양한 응용 가능성이 열려 있습니다. 향후 이 연구가 알츠하이머병, 근감소증, 파킨슨병 등 노화 관련 질환을 늦추는 실질적 치료제 개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가 큽니다.
이번 KAIST 연구진의 발견은 단순히 노화를 늦추는 방법을 찾은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RNA 차원의 품질 관리가 인간 수명 연장과 직결될 수 있음을 분명히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펠로타 단백질을 중심으로 한 후속 연구와 치료제 개발이 본격화된다면, 우리는 노화와 싸우는 새로운 무기를 얻게 될지도 모릅니다.
노화는 막을 수 없는 과정일지라도, 그 속도를 늦추고 건강한 삶을 연장하는 것은 과학의 힘으로 충분히 가능하다는 희망을 이번 연구가 보여주고 있습니다.
